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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집 권11,12 (盧沙集 卷11,12) 요약정보 및 구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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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기정진 (奇正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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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 19.7 x 세로 31cm

기정진 [奇正鎭, 1798~1879]
본관 행주(幸州). 자 대중(大中). 호 노사(蘆沙). 시호 문간(文簡). 1798년 전북 순창(淳昌) 복흥면 조동에서 태어나 장성(長城)에서 자랐다. 순창에서 살게된 것은 13대 조부가 계유정난으로 세조가 즉위하면서 관직을 버리고 낙향하였기 때문이다. 5세 때부터 한문을 익히기 시작하였다. 천연두를 앓아 한쪽 눈을 실명하였다. 8,9세에 이미 경사(經史)에 능통했고, 13세 때는 백암사(현 백양사)에서 학문에만 전념하기도 하였다. 유학(儒學)에 전심하여 34세에 사마시에 장원으로 합격한 후, 강릉참봉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고 성균관에 머물며 학업에만 몰두했다. 다음해 증광시에 응시했다가 낙방하자 관직을 포기하고 낙향하였다. 1842년 관직에 잠깐 나아갔으나 일주일만에 사직하였다. 1866년(고종 3년)에 조정에서 동부승지, 호조참판 등에 임명하였으나 사양하였다.

40세 이후 그에게 경학을 공부하려는 선비들이 모여들었고 그가 살았던 전라도를 중심으로 많은 문인들이 찾아와 수학하였다. 그의 사상은 손자인 우만(宇萬)과 많은 제자들에게 전수되었다. 46세에 《납량사의(納凉私議)》를 저술하였으며 이후 송대(宋代)의 철학자 주돈이(周敦頤) ·장재(張載)·정이(程頤)·주희(朱熹) 등의 성리학을 독자적으로 연구하였다. 48세에 《정자설(定字說)》과 《우기(偶記)》를 저술하여 사당칠정을 다루었다. 56세에 《이통설(理通說)》을 저술하고 81세에 그가 평생동안 연구한 이기론을 정리한 《외필(猥筆)》을 저술하였다. 조선 유학을 대표하는 한 사람으로 서경덕(徐敬德)·이황(李滉)·이이(李珥)·이진상(李震相)·임성주(任聖周)와 함께 성리학(性理學)의 6대가(六大家)로 일컬어진다. 그가 사망하고 문인들이 스승의 글을 모아《노사문집(蘆沙文集)》을 간행하였다.
[출처] 기정진 [奇正鎭 ] | 네이버 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