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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수 (丁大秀)
본관은 영광(靈光)이며, 자는 사중(士中), 호는 양천(陽泉)이다.
1882년(고종 19)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 해룡리에서 태어났다. 감찰을 지낸 정극명(丁克明)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정영희(丁永喜)이다.
정대수(丁大秀)는 25세 때인 1906년(고종 43) 경의책(經義策)으로 박사 초시에 합격했으나, 동생이 죽자 벼슬할 뜻을 버리고 주경야독하며 오직 학문에 열중했다. 1904년 기우만(奇宇萬)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하였으며, 1910년 고군산도에 있는 전우(田愚)의 문하에 들어가 『소학(小學)』·『대학(大學)』·『근사록(近思錄)』·『심경(心經)』·『주서백선(朱書百選)』 등을 배우면서 강록(講錄)을 작성하였다.
1912년 전우가 계화도로 옮기자 일단 집으로 돌아왔다가 전우가 왕등도로 옮겨 가자 여러 차례 왕등도에 왕래하면서 경전이나 성리학의 의문점을 물었고, 서신을 보내 잘못된 점을 바로 잡기도 하였다. 정대수는 모종관·유영선(柳永善)·권순명 등 동문과 유확연 등 당대의 유학자들과 교유하며 학문을 강론하고 시문(詩文)을 지었다. 전우가 세상을 떠나자 1년간 심상(心喪)[상복을 입지는 않으나 상중(喪中)과 같이 처신하는 행위를 말함]하며 근신하였다. 1959년 4월 78세로 죽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정대수 [丁大秀]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