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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규렴 [宋奎濂] 1630(인조 8)∼1709(숙종 35).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 은진(恩津). 자 도원(道源). 호 제월당(霽月堂). 시호 문희(文僖). 19세에 사마시(司馬試)에, 1654년(효종 5)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각각 급제했다. 1677년(숙종 3) 사간(司諫)에 이어 집의(執義) 때 신병으로 사직했다가 다시 복직, 송시열(宋時烈) ·송준길(宋浚吉)의 신원을 주장하다가 파직당했다. 1680년 경신환국(庚申換局)으로 서인(西人)이 집권하자 재기용되어 사성(司成) ·승지(承旨) 등을 지냈다. 1689년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서인이 몰락하자 낙향, 학문을 닦다가 1694년 갑술옥사(甲戌獄事)로 다시 정국이 바뀌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등을 지내고, 1699년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우참찬(右參贊) ·예조판서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퇴하다가 80세 때 돈령부지사(敦寧府知事)에 올랐다. 학문이 뛰어나 송시열 ·송준길과 함께 삼송(三宋)이라 불렸으며 전서(篆書) ·주서(籒 書)를 잘 썼다. 회덕(懷德) 미호서원(美湖書院)에 배향되었다. 문집 《제월당집(霽月堂集)》이 있다.
송상기 [宋相琦] 1657(효종 8)∼1723(경종 3).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 은진(恩津). 호 옥오재(玉吾齋). 자 옥여(玉汝). 시호 문정(文貞). 송시열(宋時烈)의 문인. 1684년(숙종 10) 정시문과(庭試文科)에 급제, 수찬(修撰) 등을 지냈다. 1689년 부교리(副校理) 때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남인(南人)이 득세하자 낙향했다가 1694년 갑술옥사(甲戌獄事)로 세상이 바뀌어 장령(掌令)이 되었다. 1702년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온 뒤 노론(老論)의 중신(重臣)으로서 예조판서 등 요직을 두루 거쳐 이조판서가 되었으나 1718년 민회빈(愍懷嬪)의 시호(諡號) 개정을 반대, 파직되었다가 곧 예조판서에 기용되고 돈령부 판사(敦寧府判事) 등을 지냈다. 1722년(경종 2) 신임사화(辛壬士禍) 때 강진(康津)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죽었다. 학문과 문장에 뛰어났다. 영조 초에 관작이 복구되었다. 문집 《옥오재집(玉吾齋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