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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역 독곡선생집 (國譯 獨谷先生集) 요약정보 및 구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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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성석린 저 / 성대용 편
출판연도 1988년 10월
출판사 창녕성씨독곡공파종회
상태 원문수록
판매가격 7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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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린 [成石璘]

1338(충숙왕 복위 7)∼1423(세종 5).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조선의 명신ㆍ명필. 자는 자수(), 호는 독곡(), 시호는 문경(). 본관은 창녕. 1357년(공민왕 6) 과거에 급제, 벼슬이 전리총랑()에 이르러 신돈()의 모함으로 해주 목사로 좌천, 다시 돌아와서 성균관 사성이 되고 밀직대언()에 뽑혀 지신사()에 올랐다. 1375년 우왕이 즉위한 후 밀직제학이 되었을 때 왜구가 대거 침입하자 조전() 원수가 되어 양백연()의 부하로 참전, 크게 전공을 세우고 공신의 호를 받았으며, 동지사사()에 승진, 뒤에 양백연의 옥에 연좌되어 함안()에 귀양갔다. 돌아와서 창원군()에 피봉 되었다. 정당문학()을 거쳐 양광도() 관찰사를 지낼 때 큰 흉년이 들자 의창()을 설치하여 구호에 만전을 기하므로 조정에서는 다른 도에서도 모두 의창을 두게 하였고, 문하평리()가 되었다. 1389년 이성계()와 공모하여 우왕ㆍ창왕부자를 몰아내고 공양왕을 세워 9공신의 한 사람이 되었다. 대제학을 지내고, 문하찬성사()가 되었다. 그 후 조선 개국 초에 이색()ㆍ우현보()의 일당으로 몰려 고향에 안치되었다가 뒤에 벼슬에 들어가 영의정에 이르렀다. 시문에 능하고 진초()를 잘 써 당대 명필로 이름을 떨쳤다.

[네이버 지식백과] 성석린 [成石璘] (인명사전, 2002. 1. 10., 민중서관)